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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느낀 것들

by hanulnote25 2026. 6. 15.

부모님이 연세가 들고 건강이 나빠지면 언젠가는 요양병원을 고민하게 됩니다. 저 역시 어머니가 치매를 오래 앓으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죄책감도 있었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을 지켜보며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도 요양병원에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지내며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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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 보낸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
치매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1. 가족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

 

처음에는 집에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이 나빠지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밤낮이 바뀌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혼자서는 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혼자서 외출하다가 넘어져서 다치고 버스에서 하차하다가 다쳐서 입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혼자서 나가 집에 돌아오지 못해 온 가족이 나서서 찾아다니는 일이 점점 잦아졌습니다. 가족들이 옆에서 보살폈지만 불가항력적인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요양병원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부족해서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요양병원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2. 면회 시간은 생각보다 소중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가장 기다리게 되는 시간은 면회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면회하는 일이 힘들어졌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경우는 입원하시고 한 달 좀 지난 후부터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어 어머니도 힘들어하시고 가족들도 힘들었습니다. 

면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여러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셨는지.

식사는 잘하시는지.

밤에는 잘 주무시는지.

겨울에는 춥지는 않으신지. 

짧은 면회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가족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3. 치매 환자와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치매를 오래 앓으셨습니다. 그래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오늘이 몇 월인지 모르시는 날도 있었고, 가족을 정확히 알아보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질문을 해도 대답이 엉뚱하게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에게 막 화를 내는 날이 있었습니다. 왜 화가 나셨는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못하셨습니다. 왜 화가 났는지 조목조목 설명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속상했습니다. 왜 화가 났는지 알면 풀어드릴 수 있는데 모르니 속만 상할 뿐이었습니다. 

면회를 가면 반가워하시면서 누군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누구야 하고 물으면 웃기만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속을 알지 못해 답답했습니다. 어머니의 생각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의 내용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손을 잡고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 코로나 시기의 면회 제한은 더 힘들었다.

 

제가 가장 아쉬웠던 시기는 코로나 시기였습니다. 한동안 면회가 제한되면서 직접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전화로 안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치매환자와 전화통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전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고 대화도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해서 어머니를 바꿔달라고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와서 받으시면 서로 대화가 되지 않아 일방적인 대화만 해야 했습니다. 제가 식사는 하셨는지, 기분은 어떠신지, 지금은 뭘 하고 계시는지 등을 물어보면 그냥 '응'이라고 답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전화해 달라고 병원에 요청해서 제가 전화하면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바로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들을 통해 어머니의 상태를 전해 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 직접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가장 아쉽게 남아 있습니다. 

 

5. 요양병원 직원분들에 대한 감사함

 

요양병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감사했던 분들은 의료진과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가족이 하루 종일 곁에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돌봐주셨기 때문입니다.

식사부터 위생관리, 건강상태 확인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치매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간식을 사갈 때에는 꼭 간호사선생님들의 간식도 챙겼습니다. 간식을 챙겨드리는 것이 작은 감사의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에도 문득 어머니를 돌봐주셨던 선생님들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6. 마지막 연락은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들은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호흡기를 달고 있었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우리 엄마 마지막 모습도 참 예쁘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지만 그날 바로 임종은 아니었습니다. 면회시간도 길게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환자들에게 방해가 되고 의료진들의 일도 방해가 되어 아쉽지만 마지막 인사만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임종하셨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사람은 마음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 상황이 되면 준비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7.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했다.

 

요양병원 생활을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조금 더 자주 갈걸

조금 더 오래 앉아 있을 걸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걸

이런 생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까지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 마음도 있습니다. 치매 때문에 많은 것을 잊어버리셨지만, 가족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

 

요양병원은 가족에게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죄책감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요양병원에 계신다면 면회 한번, 손 한번 잡아드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큰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금 돌아보면 면회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