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조문이 단순히 예의를 갖추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고를 듣고 빈소에 와서 인사를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한 뒤 돌아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상주가 되어 부모님 장례를 치러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야 누가 어떤 마음으로 찾아왔는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조문객들이 남기고 간 것은 부의금이나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사람의 진심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부모님 장례를 치르며 조문객들이 다녀간 뒤에야 알게 된 사람들의 진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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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멀리서 와준 것 자체가 큰 위로였다.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었습니다. 직장 때문에 바쁜 사람도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 몇 시간을 운전해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침 취직이 되어 내일이 첫 출근이라 멀리서 기차를 타고 와서 새벽에 다시 출근하러 가는 분도 있었습니다. 부고를 받고 운전도 싫어하고 잘 못하지만 4명의 나이 든 지인들이 장시간 고속도로 운전을 해서 찾아와 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멀리서 버스를 타고 와 다음날 일상에 다시 복귀해야 하지만 발인 때 관을 들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에 버스표를 바로 취소하고 발인까지 함께 해준 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난 뒤 생각해 보니 그분들도 자신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시간을 내어 와 주신 것이었습니다. 조문을 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직접 상주가 되어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2. 평소 연락이 없던 사람의 방문이 더 기억에 남았다.
평소 자주 연락하던 사람들의 방문도 감사했지만,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준 것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몇 년 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도 있었고,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분도 계셨습니다.
부고를 알리는 것이 부담이 되는 관계가 있습니다. 평소에 자주 연락하고 만났던 지인이 아니라면 부고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빈소를 방문해 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왔어? 소식은 어떻게 알고? 안 와도 되는데 고맙다"라고 말하니 "당연히 와야지.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아 너의 마음을 알지 못하겠다. 힘들지?"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연락이 뜸해졌다고 관계가 끝난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장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부고를 듣고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3. 말보다 함께 있어주는 시간이 더 큰 힘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많은 위로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말보다 함께 있어준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가 가셨습니다. 어떤 분은 식사만 함께하고 가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시간 자체가 큰 위로였습니다. 슬픔을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4. 연도회 분들의 기도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저의 경우 어머니 장례를 천주교 장례로 치렀습니다. 조문객이 많은 저녁시간도 감사했지만, 오히려 오전이나 이른 오후처럼 비교적 한산한 시간에 찾아와 주신 연도회 분들이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연도회에서는 시간대별로 오셔서 연도를 바쳐 주셨습니다. 상주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식사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고 가셨습니다. 발인날에도 오셨습니다. 화장장과 납골당까지 함께 해 주시고 가는 내내 버스 안에서도 연도를 바쳐 주셨습니다. 힘들고 슬픈 발인날 함께 해주신 연도회분들 덕분에 어머니를 추모하는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봉사라고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접 겪어보니 그 기도 속에 담긴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가장 감사한 분들을 떠올리면 연도회 분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5. 가족들이 밤을 함께 지켜준 것이 고마웠다.
장례 기간동안 가장 힘든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조문객들이 돌아가고 빈소가 조용해지면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났습니다. 그 시간에 가족들이 함께 있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 부모님에 대한 추억도 나누었습니다. 그 속에서 알게 된 것은 같은 사건도 기억하는 내용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추억의 내용을 공유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밤이었습니다.
멀리 사는 가족들은 퇴근 후 늦은 시간에 도착하기도 했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지 위해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피곤했을 텐데도 빈소를 지켜주고 부모님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마음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6. 장례는 사람의 진심을 다시 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장례를 치르면 의외였던 점도 있었습니다.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족행사에는 늘 오던 사촌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형편을 들어보니 사촌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자녀들도 모두 출가하여 이제는 가족행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여 자신의 가족행사에 사람들이 적게 와서 단출할까 봐 고민했던 사촌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상경하여 우리 집에서 성장했던 사촌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성공하여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성공이 자신의 노력이었음에도 잊지 않고 부모님의 장례를 챙기려는 사촌의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누가 맞고 틀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각자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7.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다.
장례를 치른 지 시간이 지나면서 장례절차에 대한 기억은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하지만 누가 찾아와 주었는지, 어떤 위로를 건네주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장례는 슬픈 일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조문객들은 잠시 다녀갔지만 그분들이 남기고 간 마음은 오래 남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조문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상주가 되어 보니 조문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한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주변에 장례를 치르는 분이 있다면 거창한 위로의 말보다 짧은 방문과 진심 어린 인사 한마디가 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 장례를 치른 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결국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